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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이라는 단어만큼 가슴에 사무치는 단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은 그런 면에서 '상실'이라는 테마를 적절히 이용할 줄 아는 감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무지개 여신>은 수많은 스포일러들이 말해주고 있듯 감독의 초기작인 <러브레터>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 (물론, 무지개 여신의 감독은 이와이 슈운지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 것은 바로 초장부터 주인공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러브레터에서는 동명이인 동창 친구였던 후지이 이츠키, 무지개 여신에서는 여주인공 아오이의 죽음이 영화의 초반에 다뤄지거든요. 우리는 이미 주인공의 죽음을 목도한 상태라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의 관계,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기억과 추억에 관해 차분히 들여다 볼 수 있게 됩니다. 눈물을 꼭 짠 손수건같은 시선으로 말이지요.

  카메라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여기에서 무지개 여신은 러브레터와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집니다. 자신의 남자친구였던(후지이 이츠키)의 첫사랑을 찾기 위해 그의 추억을 더듬어가는 히로코의 시선과, 아오이와 토모에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는 무지개 여신의 시선은 묘하게도 닮았습니다. 또한 자신과 이름이 같았던 후지이 이츠키가 실은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것도, 자신을(토모에) 친한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던 아오이가 실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그 사실을 알게됐을 때 밀려오는 어찌할 수 없는 격양된 마음이 불러 일으킨 두 주인공의 울음 역시도 묘하게 닮았죠. 그 슬픔은 '상실'에서 오는 것일 겁니다.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길 없는 존재의 부재에서 오는......  

  무지개 여신은 썩 괜찮은 영화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러브레터만큼 마음의 파문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러브레터를 보면서 사실은 울었거든요. 물론 무지개 여신을 러브레터와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로 굳이 짜맞추어 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다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아오이에 대한 감정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토모에의 눈치없음은 뭐랄까 조금 작의적으로 느껴졌거든요. (러브레터는 중딩이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치더라도, 아오이와 토모에는 적어도 대학생이지 않습니까, 흠흠.)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멍청이 토모에! 라고 한 열번쯤 중얼거렸던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우리는 '사랑'이라는 메타포에 부딪치면 서툴고 서툰 눈치코치 0단의 바보들로 변하는 건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아오이가 만든 영화는 정말이지 압권입니다. <최후의 마지막 날>, 이 영화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한 아오이가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토모에를 위해 만든, 남긴 선물과도 같은 영화니까요. 문득 저는 지구 최후의 마지막 날이라면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을 곰곰히 해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상실'을 반복하면서 성장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러브레터를 성장 영화라고 본 사람도 있잖아요? 저 역시도 무지개 여신을 성장 영화라고 보고 싶습니다. 아오이라는 존재의 상실을 딛고 토모에는 어찌하였든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인지하게 될테니까요. 또한 토모에의 추억의 근간에 아름답고 귀여운 미소를 지니고 있었던 아오이가 영원히 존재할테니까.

'상실'은 참 슬픈 단어지만, 더 이상 그 '상실'앞에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2006년도 제 마지막 바람입니다.

by 카퍼필드

원본링크  http://www.1pagestory.com/main/cafe_view.php?id=v8_review&no=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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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7 10:4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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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 제 블로그에서 누군가 트랙백을 한 건 처음이에요!
    왠지 감사합니다~^-^

    제 리뷰에 비해서, 평을 굉장히 정성껏 쓰신 느낌입니다.(창피하고..그러네요)
    특히, "눈물을 꼭 짠 손수건같은 시선"이란 구절이 좋네요.
    영화를 봤을 당시가 떠오르기도 하고..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영화가 꽤 있는 거 같아요.
    '봄날은 간다'라든가..
  2. 2007.02.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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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더라도 비워내는 만큼 새로이 받아들일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거겠죠?
    상실과 재생...을 반복해야지 성장할수있다고는 하지만 늘 새롭습니다.
    저도 카퍼필드님처럼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좋은글 읽고 갑니다.
  3. 2007.04.26 08:1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우연히 무지개여신 으로 검색을 했다가
    논리적이지만 딱딱하지 않고 따뜻한 느낌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꼭 보고싶은 영화라서요^^
    그러면 자주 들르겠습니다.^^
  4. xiahra
    2008.06.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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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여신을보고궁금한점이있어서
    지식인을뒤져봐도못찾겠네요ㅜㅜ
    무지개여신中아오이가만든<최후의마지막날>에서
    마지막에주인공여자만이죽잖아요,
    그안에서의내용이이해가안되네요ㅜㅜㅜ
    라디오나tv에서도D-day카운트를했는데
    어째서주인공여자(극중아오이)만이
    죽음을맞잏나거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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